대한불교조계종 망월사

성보

은둔의 수행도량 천중선원
도봉산 망월사

망월사 성보

대한불교조계종 망월사

망월사 괘불도괘불함 및 복장낭 포함
망월사 괘불도

이 불화는 1887년(고종 24)에 조성된 아미타괘불화(阿彌陀掛佛畵)로 영산재(靈山齋) 등의 야외 법회에 헌괘되었던 의식용 불화이다. 연하(淵荷)계창(啓昌)을 수화사로 하여 혜산(蕙山)축연(竺衍), 석옹(石翁)철유(喆侑) 등 11명의 화승(畵僧)이 그렸다. 하정덕혜(河淨德慧) 등 5명의 상궁(尙宮)과 4명의 여신도(女信徒)가 시주하여 조성한 19세기 대표적인 아미타계 괘불화이다. 현재 의정부시 호원동 망월사에 소장되어 있다.


세로 6.40m, 가로 3.54m의 크기에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다. 화면에는 아미타삼존(阿彌陀三尊)과 가섭존자(迦葉尊者)와 아난존자(阿難尊者)가 표현되었는데, 중앙에는 거대한 아미타불(阿彌陀佛立像)을 중심으로 좌측에 관음보살(觀音菩薩)과 가섭존자, 우측에 보현보살(普賢菩薩)과 아난존자가 시립한 오존도(五尊圖) 형식을 취하고 있다.
중앙의 아미타불은 오른손을 가슴 부근으로 올려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손가락을 마주잡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근으로 내려 손바닥을 아래로 하여 손가락을 마주한 특이한 수인(手印)을 취하였다. 좌측에는 보관(寶冠)을 쓴 관음보살이 두 손으로 길게 여의(如意)를 들고 있으며 우측의 대세지보살은 연꽃가지를 길게 잡고 있다. 두 보살은 입상으로 표현되었으면서도 마치 앉아있는 것처럼 신체가 짧아 어색한 느낌을 준다. 관음보살 위로는 노비구 모습의 가섭존자가 두 손을 마주 잡은 채 손가락을 곧게 세워 올렸으며, 반대편에는 젊은 승려의 모습으로 아난존자가 합장하고 서 있다. 한편 가운데 존상인 아미타불에 대해서 아미타불이 아닌 석가불로 보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 비슷한 구성을 보여주는 아미타괘불화로는 1905년에 조성된 범어사 아미타괘불화가 있으며 두 본 모두에 고산 축연이 참여하였다. 따라서 1887년 망월사 괘불도 제작에 참여했던 축연이 1905년 범어사 괘불 조성에 망월사 괘불 도상을 참고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19세기 중엽 이후에 조성된 괘불화가 20점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16점의 괘불화가 아미타계 불화이므로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아미타계 괘불화가 유행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조선말기 불교 교단은 만일염불회(萬一念佛會)와 수월도량공화불사(水月道藏空花佛事)가 성행하였고, 만일염불회에서는 아미타 염불신앙이 크게 유행되어 불사를 진작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이러한 조선말기 아미타신앙은 괘불화에서도 아미타불 도상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추측된다.
화기(畵記) 말미에는 ‘이 공덕이 누구에게나 두루 미쳐 모든 중생(衆生)이 극락정토에 태어나서 무량수(無量壽)를 친견(親見)하면서 다 같이 불도(佛道)를 이루기를 기원한다’는 발원문이 기록되어 있다.
채색은 붉은색, 남색, 녹색을 주조색으로 하였고 화면 상부에 갈색 구름의 음영법이 강하다. 이외에도 음영법은 인물의 주름이나 옷의 주름에서도 표현되었다. 인물표현의 특징으로는 유난히 상반부가 하반부에 비해 큰 비율이며 손이 크고 손의 표현법도 특이하다. 특히 아미타불의 손은 손안쪽의 손금까지 표현하였는데 도식화되었다.
현존하는 괘불화 100여점 가운데 아미타계 괘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19세기∼20세기의 괘불 가운데 상당수가 아미타계 괘불화라는 점은 당시 불교계의 성향을 알 수 있다. 이 불화는 19세기 이후 아미타신앙이 유행하여 괘불의 도상에도 아미타불화가 적용된 예를 제시해주는 중요한 불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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